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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cinema

[그을린 사랑] 상처와 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쓰다듬는 단하나의 따뜻한 손길

오랜만에 남편과 씨네큐브 데이트에서 본 영화.
도대체, '그을린 사랑'이란 어떤 형태일까를 곰곰히 생각해봐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니, 어떤 사랑을 그을린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도 아니고 단순히 가족영화도 아니고,
엄밀히 말하자면 모성영화예요.

전쟁의 잔인함은
가족의 끈을 끊어버리고 육체와 정신에 피를 내고 결국 그 위에 오랜시간이 지나도 그 흔적을 기억하게 하는 상처를 남깁니다.
특히, 전쟁은 아이들에게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알지도 못한채 아이들을 부모를 잃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못한채 성장해
잔혹한 살인무기가 되어버리기도 하니까요.

그리스 비극처럼,
전쟁은 주인공들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습니다.
1+1=1이라는 공식 앞에, 모두가 피해자일 뿐입니다.
가해자는 전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지켜야 하고 보듬어야 하는 어머니의 품,
어머니라는 따뜻한 모성이 있어 무수한 전쟁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고 역사는 이어져 갑니다.

영화가 절정에 이르르면 숨이 막힐것만 같은 충격과 슬픔이 관객을 압도하지만,
영화가 막을 내리면, 영화가 말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따뜻한 힘에 대해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그을린 사랑'이란 어떤 사랑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은 햇볕에 타지 않고 고유한 모습을 고이 간직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숭고하고 고결한 태곳적 아름다움을 간직합니다.

그러나 빛바래서 그을리고 타버린 것들은 싱싱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돼야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족이며,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처받고 흉터가 남은 가족의 쓰라린 사랑, 그것이 바로 그을린 사랑인 것 같습니다.

참 오랜만에 만나 따뜻한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