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친구(1)

 

주말에는 덕수궁에서 고교 동창들을 만났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것같고, 또 어찌보면, 더 많이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서로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암묵적으로 보듬어주고 마음으로 위로해주게 되는 그런 우정. 한때는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서로 질투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인지 그냥 다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또, 결혼 후 내가 겪었던 파란만장했던 삶들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의 눈빛 속에서 나도 이해받는 것의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주말은 항상 가족과 함께를 모토로 신혼을 시작한 나는 사실 요즘 그 구호가 구성원들에게 감옥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요즘 절실히 하고 있다. 그래서, 거의 매주 토요일에는 언어교환을 핑계로 아침에 외출을 했다 2시경 돌아오곤 한다. 그 핑계로 이번에도 친구들을 만날 약속을 획득할 수 있었다. 내 이런 빠듯한 일정 탓에 무리하게 휴일 오전 11시로 약속을 잡고, 다들 천천히 나오라고 신신당부하고 나만 일찍 가있을테니 부담갖지 말라 일러놓고는, 나는 정작 20분이나 늦고야 말았다.

 

늘 그렇듯이 백미진은 정시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전에 미리 약속한 개복숭아 액기스를 관절 안좋은 아버지께 드리라고 전하고 던킨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진이는 고3 때 우리반 퀸카였다. 내 기억에 그녀는 우리반 외모 순위 2위였다. 그게 나에게만 유달히 그렇게 보였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고2 때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때 늘씬하고 큰 키에 도시적인 외모는 여자인 내가봐도 참 예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픔같은 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고3이 되어 비슷한 번호대라 가까운 자리에 앉아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진 미진이는 공부도 잘 했고, 그 때 우리들이 다들 내면에 꿈꾸고 있던 날라리가 되고픈 욕망을 가끔 실현하는 아이였다. 그때는 그게 멋있어 보였으니까. 그러면서도 공부며 해야 할 일들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아이였고, 미진이는 목표하던 어문계열에 지원해 건대 중문과에 들어갔다. 참, 그녀의 외모에서 특히 눈에서 어딘지 모를 슬픔이 서려있었던 것은 엄마가 일찍 돌아가서였던 탓일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는 종종 둘이 만나 영화도 보고 함께 술도 마시곤 했는데, 언제가 미진이는 돌아가신 엄마 이야기를 하며 아빠를 매우 원망했었다. 어린시절 겪었던 엄마의 부재를 통해 그녀는 어쩌면 자신도 그런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고 그래서 건강관리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미진이는 마음 속 깊이 숨겨놓은 자신의 상처 같은 것을 나에게 공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아빠를 조금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진이를 떠올리면 그날의 미진이의 고백과 함께 우리는 어떤 동질감 같은 것을 갖게 된다.

 

미진이는 굉장히 스탠다드한 아이다. 모든 면에서 그녀는 마치 중용을 가치관처럼 여기는 사람인듯, 모든 삶이 대체로 조화를 이룬보기드문 사람이다. 성적, 직장, 자기관리, 가족 내에서 그녀의 헌신도, 친구에 대한 배려 등등. 그녀를 보면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스탠다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실 매우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그리고 그녀는 감정적으로도 별로 치우침이 없다. 우리가 함께 직장생활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 그녀의 일화들에서 그녀의 반응은 거의 사람을 뛰어넘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면서도 내면에 쌓아둔 스트레스와 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녀는 참 대단하고 훌륭한 인격자다. 미진이는 가끔 결혼과 관련해 나의 선택에 대해 어리석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나는 진정한 친구라면 그 친구를 믿고 그 친구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결혼 초 그녀의 반응과 시선에 매우 불편했고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4년의 시간이 흐르고 아직 솔로인 그녀는 오히려 나의 결정과 내가 살아온 시간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시선 때문에 내가 더욱 미진이를 속깊은 친구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누구나 그 사람의 처지가 돼보지 않고, 그 사람의 결정을 비난할 수 없다. 설령 그 결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든 나쁜 결과를 가져오든 인생 전체를 놓고 보자면, 모든 결정은 다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어떤 결정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진이도 결혼과 관련해 조만간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찾게 될 것란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그녀가 스탠다드한 결혼이 아닌 진정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결혼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만간.

 

덕수궁이며 전통의 것들을 유달리 좋아했던 현숙이의 뜻에 따라 덕수궁에 입궐(?)해 덕수궁을 거니는데 곳곳이 단풍이 만연했다. 우리는 덕수궁을 거닐다가, 고3때 현숙이가 수능을 50일인가 앞두고 갑자기 등교를 하지 않아 교실이 발칵 뒤집혔던 것을 떠올렸다. 특히나 그녀는 강씨였던 탓에 우리반 1번이었다. 출석부를 부를 때마다 그녀의 부재는 교실 전체에 확인되었고, 유난히 까탈스럽고 대치동 스타일이라며 사당동을 마치 어느 시골동네로 치부하던 담임의 언짢은 표정은 우리반 전체를 더욱 하나로 만들어 현숙이의 무사 등교를 간절히 바라게 했던 것 같다. 그때, 우리의 무리였던 현숙이라는 아이의 존재를 처음으로 가장 강렬하게 인식했었다. 당시에 나는 현숙이와는 아주 친하지는 않았었고, 우리는 같은 무리에 속했지만, 비교적 덜친한 관계였다. 그녀는 12시가 넘어서 교실에 모습을 비쳤고, 몰려든 아이들에게 "그냥 학교오기 싫어서 인사동 가서 놀다왔어."라고 쿨한 답변을 날리는데, 그게 마치 어느 드라마에서나 느낄수 있었던 차원이 다른 느낌, '아 저래도 되는 것였어' 하는 상식의 파괴. 그 사건은 우리 무리 뿐 아니라 우리반 상당수 아이들에게 매우 쇼킹하고도 현숙이를 각인하는 강렬한 것이었다. 그때 우리반 중 현숙이를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때 그 의외성은 이후 대학을 진학하고 그녀가 보여준 행보들에서도 여실했다. 인천대 무역학과를 다니다 중국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무역회사를 다니다 영국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싱가폴에서 취직해 일하다 2년전 들어와 미국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정말로 자기자신에게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그 자신감 덕분인지 겁이 없다. 사실 한때는 그 자신감이 조금 지나치게 느껴져 좀 멀리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매 순간에 대한 집착이 없는 그녀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 모든 순간에 절반만 최선을 다하고 그 것이 온전히 내것인양 집착하는 나와는 참 대조적이다. 덕수궁을 거닐며 우리는 옛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그녀의 진면목에 대해 15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요즘 나는 친구란 무엇일까에 대해 마치 고등학교 사춘기 때처럼 깊이있게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 나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가족이나 가장 오래된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다는. 삶에 치이다가 한 숨 돌리려고 보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어디있는가를 고민하다가, 요즘 진정한 친구란 무엇이며, 진정한 친구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잊어버린 답을 찾고자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곤 했다.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다시 한번, 내가 잊고 있었던 그 생각들이 내겐 답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오래될 수록 우정은 더 진하며,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를 서로 아껴주는 동반자가 진정한 우정일 것일다. <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몽환의꿈 > 혼잣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Oldest but goodest  (0) 2013.11.05
둘째, 꿈, 리쌍의 길  (0) 2012.04.03
비가 오면 혈압이 낮아지는 걸까?  (0) 2012.04.03
너의 의미  (0) 2009.09.07
[일러스트] 아츠시 후쿠이  (6) 2008.12.14
바람의 이야기  (2) 2008.12.03
Posted by smirea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