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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exhibition

고흐를 좋아하세요?

불멸의 화가, 고흐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시립미술관에 다녀왔어요. 이것도 한 3 주 됐네요.;;;
고흐는 불멸의 화가라는 표현에 걸맞게 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입니다.
특히, 고흐에 대한 애정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더 각별하다네요.
강렬한 그 그림 속에 담긴 그의 삶은 더 강렬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저는 고흐하면 자연의 화가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고흐는 최고의 예술이란 자연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연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서 빛에 의한 인상적인 순간을 그림화했다고 봅니다.

이번 전시에는 고흐의 유명한 작품들 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많았어요.
특히, 고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해바라기를 볼 수 없어 살짝 아쉬움이 남더군요.

그런데, 한편으로 그동안 우리들에게 잘 소개가 안되었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할 당시 모네와 같은 점묘화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랄지
일본 화풍에 영향을 받았던 작품들도 전시 되었답니다.

그리고, 전시를 작품시기별로 잘 정리해 놓아서 보기 편했어요.
프랑스에서 활동기, 네덜란드 활동기, 이 후 정신병원에서의 활동기
(저는 정신병원에서 그린 작품들은 보지 못했어요. 3층 전시실에 전시 돼있었는데,
관이 2개로 나눠져있었는데 드로잉관이 전부인줄 착각했지 뭡니까?^^)

그럼 그림 감상 좀 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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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ow, 1882> 고흐의 연인이었던 거리의 여자 시엔을 모델로 그린 비교적 초기 드로잉입니다. 초기에 그린 이 작품은 고흐의 인생 전체를 말해주는 그림이 돼 버렸다고 하네요. 제목 그대로 S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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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르의 노란집,1888> 노란집의 오른 채에 세 들었던 고흐는 이 집에서 1888년 9월 부터 살기 시작해 채 반년도 살지 못했답니다. 그러나 고흐는 이곳을 고갱과 같은 화가들과의 아지트로 만들고자 했을만큼 꿈꾸던 자신만의 공간이었습니다. 고갱과의 다툼으로 고흐는 이곳에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정신병원에서도 고흐는 이 집을 무척 그리워했답니다. 자기만의 방이었던 이 곳을 그는 세 번이나 그렸을 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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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게, 1889년 1월>아를의 정신 병원에서 퇴원한 후 그림에 대한 느낌을 되살리기위해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이시기 일본의 잡지에 실린 목판화를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랍니다. 반 고흐는 늘 일본 화가들의 데생기법과 세부를 상세히 묘사하는 그들의 재능을 동경 해 해부학적으로 자세히 묘사 하고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붉은색과 녹색의 대비가 고흐의 불안한 심경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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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생트가 담긴 잔과 술병, 1887년 2-3월> 압생트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즐겨 마시던 술로, 특히 예술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답니다. 값은 싼 반면 도수가 높아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압생트를 무척 즐겨 마셨답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거의 알코올 중독 상태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는 군요. 이 작품은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은 초기의 작품 중 하나로 파리에 머무는 동안 제작된 작품으로 날카로운 사선 구도 역시 일본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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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뿌리는 사람, 1881년.> 평소 고흐는 밀레를 존경했고 그래서 밀레의 그림 중 몇점을 고흐의 방식으로 다시 그리기도 했지요. 밀레의 원작보다 음영이 더 강조되어 있는 것이 고희 작품의 특징. 고흐는 주로 밭갈이나 감자 수확, 아니면 단순히 인물의 움직임을 습작한 것 등에서 땅 파기를 주제로 작품을 많이 했습니다. 가난한 서민들의 노동과 그 애환을 담고자 했다고 합니다.